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해협 해전 (문단 편집) === 교전 개시 === 경고 사격에 적 수송선은 백두산함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중기관총과 포를 사용해 응사에 나서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으며, 늦게 출항했던 YMS-518정도 전투에 동참하였다. 여기서 적선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. 좌현쪽에 등 하나가 꺼지지 않은 것이다. 그 등불 덕택에 백두산함은 조준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. 그렇게 두발을 적선 갑판 쪽에 명중시켰다. 그러나 적선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은 듯이 응사를 계속했다[* 참고로 백두산함의 주포는 76.2mm, 적함은 85mm으로 포격전에서는 적함이 유리했다.]. 이에 함장의 명령으로 배 흘수 아래쪽을 노리고 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. 그렇게 백두산함은 선체 아래쪽을 노리기 위해 접근했다. 접근할수록 명중률은 높아졌고, 900m까지 접근했을 때, 백두산함에서 발사된 포탄이 적선의 [[마스트]]에 명중(!)했고, 외부 선체에도 구멍이 나서 적 수송선이 침몰하기 시작했다. 침몰하는 와중에 적 수송선은 발광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, 이를 본 아군 함정들은 위치를 더욱 확실하게 노출한 적 수송선을 향해 정확히 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. 이때까지 백두산함은 함포로 20발을 쏴서 5발을 맞췄다.[* 단순 계산으로 약 25%. 승조원들이 포를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.] '''그런데 3인치 함포가 고장이 나버렸다!''' 3인치 함포를 계속 쏘다 보니 격발 장치의 고무 스프링이 녹아 고장난 것이다.[* 이 스프링은 교체도 금방 할 수 있었고 함포를 구입하면서 예비 부품을 잔뜩 받아 함내에 갖춰두기도 했지만 실탄 사격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100발 밖에 못산 포탄이 아까워서 모의탄으로 장전과 조준 훈련만 했고, 이때서야 처음으로 실탄을 쏘며 싸우던 백두산함의 승조원들로서는 원인을 바로 알아채긴 어려웠다.] 주무장이었던 함포가 고장나자 함장 최용남 중령은 기관총으로 반격을 명령, 적 수송선과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. 그러나 너무 접근한 탓에 백두산함이 적탄을 맞고 말았다. 소련제 '''85mm''' 포탄 한 발이 조타실을 관통하며 3명의 승조원에게 중상을 입혔다.[* 해당 포는 [[T-34-85]] 등에 장착된 전차포로 추정된다. 북한 역시 해군력이 빈약하여 함정에 전차포를 달아 쓰곤 했다.] 김종식 소위가 발에 부상을 입고, 김창학 삼등병조와 전병익 이등병조는 복부에 치명적인 관통상을 입었다. 부상자는 식당으로 옮겨졌고, 군의관 김인현 중위가 응급치료를 실시했지만 안타깝게도 김창학 삼등병조와 전병익 이등병조는 전사했다. 전병익 이등병조는 전역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. 26일 새벽 1시 38분 결국 적 수송선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치열했던 포격전이 끝났다. 전투 이후 백두산함은 진해에 입항 후 사상자 3명만 상륙시킨 뒤 재보급 후 전투가 벌어진 해역으로 재출동, 적선 침몰의 증거를 찾기 위해 일대를 4시간 동안 수색했으나 생존자는 없었고 옷가지와 기름띠, 나무상자 같은 간접 증거물만 떠다녔다. 그렇게 백두산함은 본 임무인 묵호 해안 상황 대처를 위해 함수를 돌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